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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여행가방을 도둑맞다

admin 0 18374 0 0
전편에서 말했듯이, 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따라 여행하던 중,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 론(Lorne)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해가 중천에서 한창 빛을 발할 때였고, 날씨마저 쾌청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 어둠의 그림자는 나를 덮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 이는 지금조차 결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 

▲그레이트오션로드를 따라 오던 중. 출발아침, 징조를 보이듯 날씨가 꽤 궂었다.
그때 나에게는 어깨에 짊어 메는 적당한 크기의 가방과 힙색(hipsack) 외에 30kg 정도 나가는 바퀴달린 여행 가방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올 생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인근의 공원을 발견했다. 

나는 공원의 모퉁이 테이블에 큼지막한 내 여행 가방을 기대어서 붙여놓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오우!! 마이 갓~~~~!!! 돌아왔을 때는 내 가방이 통째로 온데간데없이 증발되어버린 후였다. 가방 속에 옷이며 신발, 캠핑장비, 노트북 PC를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 어댑터들이 들어있었는데!

잠시 동안 내 안엔 수많은 상상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대고 있었다. ‘설마, 설마, 설마 도난/분실? → 찾지 못할 시엔? → 귀국??’

우선 근처의 사람들에게 내 가방을 본 사람이 없는지 닥치는 대로 물어보았다. 한낮이었기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안전상의 문제로 순찰 중인 경찰들 경찰서로 이송하였는지 의심하여 찾아보고 신고도 하였으나, 결과는 내게 한층 두터운 절망만으로 돌아왔다.

없어질 줄 모르고 가방을 그렇게 놓아뒀느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이었다. 사실 지금껏 한 달 남짓을 여행을 다니면서도 크고 작은 물건을 곧잘 잃어버렸지만 거의 모두 되찾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서 내 가방을 열어보고 무언가를 가져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커다란 가방이기에 누군가 쉽게 가져가리란 생각을 하는 것이 더 터무니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물어물어 다니던 중 한 젊은 모녀와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내게 자기 아이가 보았다고 했다. 

그 조그만 여자아이는 어느 금발머리의 청년(?)이 유트(UTE-호주속어 utility vehicle. 우리나라의 4륜구동차)에 실어 그대로 사라졌다고 내게 짧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아이가 좀 더 큰 어른이었으면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 놈(!)이 경찰이 아닌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건은 자명해졌다.

난 여행 가방을 도난당하고 만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우선 사고지점을 비롯하여 그 조그만 시가지 전체에 수배령을 비롯해 다른 목격자를 찾을 생각으로 전단을 써서 붙일 생각을 짜냈다. 하지만 그 생각도 곧바로 좌절에 부딪혔다. 정부의 허가 없이, 종이를 붙이는 건 불법이라고 ‘인포메이션센터’의 직원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설명해주었다. 하긴 그렇다. 

도둑이 맘먹고 가져간 걸 찾을 방도는 없어보였다. 호주는 수많은 여행자의 천국이다. 여행 온 외국인이 내 가방을 훔쳐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더 해봤다. 경찰서에 신고는 물론 우리나라 대사관, 영사관에 죄다 도움을 구했으나,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신고접수 정도였다. 

여행자보험에도 전화를 했으나, 그쪽에서 보장할 수 있는 건 고작 ‘질병이나 부상’에 따른 보상이었다. 정말 하늘이 노랗게 갈라지면서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그나마 대부분의 돈을 여행자수표로 여권과 함께 힙색에 가지고 다니고 있던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내게 평생 잊을 수 없을 이곳 론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지만, 혹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하룻밤은 예정에 없이 이곳에 잠자코 머물러야 했다. 

밤이 깊어 가도 누군가에게조차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괴로움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날 새기가 무섭게 다시 가방 잃어버린 지점을 찾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도움 청할 이가 아무도 없는 이국 땅에서 벌어진 이 사고는 내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옷과 신발, 캠핑장비, 노트북 PC 등 각종 전자기기, 어댑터들은 금전적으로 따지면 수백만원어치나 되는 크나큰 손실이었다. 

또 첫 번째와 두 번째 우프를 거치며 친구들과 멋진 풍경사진을 찍은 300~400장 가량의 사진들을 한 순간에 잃었다는 상실감은 내게 정신을 한껏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경찰서에서는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으나, 그들의 무성의한 태도를 보니 찾을 가능성은 더욱 없어보였다. 결국 나는 오던 길의 반대편인 질롱(Geelong)이란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간단한 속옷이며, 세면도구들을 구하기에 론은 제약이 컸다. 또한 꺼져가는 휴대폰 배터리를 급히 충전시킬 어댑터도 구해야 했다. 


Geelong으로

근방에서 Geelong은 그나마 규모 있는 도시로, 제법 대부분의 것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여행이고 뭐고, 한국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 굴뚝같이 컸다. 여차하면 언제라도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물품을 사는 것도 신중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우프를 구해야 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하고 나니, 질롱에서 며칠 머무는 것이 적지 않은 금전적인 출혈로 이어질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프를 잡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받아 줄 수 있는 곳이 아폴로 베이(Apollo Bay)에 있는 농가였는데, 3일 후부터 가능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결국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리는 길밖엔 없었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시름에 빠지실 부모님을 생
각하니, 전화박스에 설 때마다 차마 전화를 걸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잃어버린 것을 구하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이 너무 커 달리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잃어버린 물건 중에는 호주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일생일대 내게 잊혀 지지 않을 이 사건은 우프 여행 초반부터 나에게 크나큰 ‘태클’을 걸어온 셈이었다. 그나마 내가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던들, 짐 싸들고 금방 ‘컴백홈’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면, 여행하는 내내도 적지 않은 마음의 짐을 제공한 이번 일은 '본전심리' 강한 나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호주에서 잃어버린 것보다 더한 것을 보상받기 전까지는 절대 이 땅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주국기(!) 아래서 굳게 다짐했었으니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질롱에서의 생활과 함께 아폴로 베이에서 만난 3번째 우프를 소개한다.
 

거기서 나는 나를 신(神)이라고 불러준 한 아리따운 이탈리안 우퍼를 만나게 되는데…^^(다음 편에 계속~) 


서용석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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